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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맞닫은 어깨

나는 왜, 그림을 그리는가?. 정재호 정용국 차혜림 윤정선 전수경 직업과 작업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재미있어야 할까? 당연히 작업이 재미있어야 한다. 작업이 괴로우면 시소를 타는 건 불가능하다. 직업이 더 즐겁다면 그걸 택하면 된다. 그런데 일은 고되지만 돌아가서 작업하는 게 즐겁다면 작업을 해야한다. p.21직업이란 '나의 활동으로 생산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고, 그 대가로 무엇을 얻어 그 활동과 을 다시 지속할 수 있게 하는 일' 이라고 생각한다. 그 '일'을 지속해야 자신의 '삶'도 무언가를 줄 수 있다. p.28우리가 직업 처럼 작업을 한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두 가지를 말하려 한다. 첫째, 노동이다.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처럼 하루에 8시간 가량 그리기를 해야한다. (중략) 둘째, 직업에 대한 관점을 가져야 한다. p.29작가는 .. 더보기
아무 말도 하지 마. 안보윤 고는 방 한복판에 누워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방이었다. 낯선 곳이었으나 벽지와 창틀 같은 것이 익숙했다. 두꺼운 나무 창틀과 불투명 유리, 두 쪽의 창이 맞물리는 지점에 막대를 찔러 넣는 잠금 방식은 좀처럼 보기 힘든 구식이었다. 고는 만질만질하게 닳은 잠금 막대 머리 부분을 바라보며 샛노란 손을 떠올렸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 오래 돋운 가래침을 뱉기 위해, 다리 몇 개가 떨어져 나간 납작하고 긴 벌레를 창밖으로 던지기 위해 막대를 꽂고 뽑았을 누군가의 손. 손이 그려내는 동선은 상상 속에서조차 짧고 단조로웠다. 애초에 여유 같은 건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사방을 잘라낸, 작고 좁은 방이었다. 벽지에는 기형의 무늬들이 프린트되어 있었다. 바퀴에 눌린 올챙이 같은 문양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치.. 더보기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한강 전철 4호선,선바위역과 남태령역 사이에전력 공급이 끊어지는 구간이 있다.숫자를 세어 시간을 재보았다.십이 초나 십삼 초,그 사이 객실 천장의 조명은 꼬지고낮은 조도의 등들이 드문드문비상전력으로 밝혀진다책을 계속 읽을 수 없을 만큼 어두워나는 고개를 든다맞은편에 웅크려 앉은 사람들의 얼굴이 갑자기 파리해 보인다.기대지 말하는 표지가 붙은 문에 기대선 청년은 위태로워 보인다.어둡다.우리가 이렇게 어두웠었나,덜컹거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맹렬하던 전철의 속력이 천천히 줄어들고 있다.가속도만으로 레일 위를 미끄러지고 있다.확연히 느려졌다고 느낀 순간,일제히 조명이 들어온다. 다시 맹렬하게 덜컹거린다. 갑자기 누구도 파리해보이지 않는다.무엇을나는 건너온 것일까?[출처]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한강|작성자 우슬초 더보기
칠월. 허연 쏟아지는 비를 피해 찾아갔던 짧은 처마 밑에서아슬아슬하게 등붙이고 서 있던 여름날 밤을나는 얼마나 아파했는지 체념처럼 땅바닥에 떨어져 이리저리 낮게만 흘러다니는 빗물을 보며 당신을 생각했는지,빗물이 파놓은 깊은 골이 어쩌면 당신이었는지,칠월의 밤을 또 얼마나 많이 흘러가버렸는지,땅바닥을 구르던 내 눈물은 지옥 같았던 내 눈물은 왜 아직도 내 곁에 있는지 칠월의 길엔 언제나 내 체념이 있고이름조차 잃어버린 흑백영화가 있고빗물에 쓸려 어디론가 가버린잊은 그대가 있었다 여름 날 나는 늘 천국이 아니고,칠월의 나는 체념뿐이어도 좋을 것모두 다 절망하듯 쏟아지는 세상의 모든 빗물,내가 여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더보기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 -프랜시스 베이컨과의 25년간의 인터뷰-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서 주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p.11작업이 잘 진행되면 쉬지않고 계속 그려 나갈 수 있지만 때때로 잘 진행된다고 생각될 때 작업을 멈춥니다. 10분 정도 휴식시간을 갖고 나면 지금까지 해 왔던 작업을 모두 잊고 돌아가서 작품을 다시 분명하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p.35나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그림을 그립니다. 보는 사람을 위한 작업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겁니까? 보는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 상상하는 겁니까? 나는 나 말고는 그 누구도 흥분시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때로 다른 사람들이 내 작품을 좋아해 주면 나는 언제나 놀랍니다. 내가 몰두하는 일을 통해 생활을 할 수 있어서 나는 아주 운이 좋은 .. 더보기
17. 椎名林檎 Now I'm seventeen my school is in the country Students wear trainers read the same magazins Now I'm seventeen my school is getting tiresome Teachers-they're so young singling me out Only like philosophy and after school the time That's what I call my own time Nice girls meet nice boys end of school day While other girls go strait home talking bout soaps'n that I go home alone like it watching th.. 더보기
나빗가루 립스틱. 몽구스 나빗가루 립스틱 떨리는 그 숨비소리 설레던 시월에 웃음은 숨결로 이 밤에 나빌레라 짧았던 여름지나가고 함께 나눈 이야기들 숨죽여 취하며 울었던 노래들 모두다 기억해요 누나야 사실 나는 말야 이밤또한 잊지않고 설레어 부르던 시월의 노래들 모두다 기억해요 짧았던 여름 지나가고 함께나눈 이야기들 죽도록 슬프던 이별에 노래들 모두다 기억해요 기억해요 기억해요 나빗가루 립스틱 떨리는 그 숨비소리 설레던 시월에 웃음은 숨결로 이 밤에 나빌레라 짧았던 여름 지나가고 함께 나눈 이야기들 숨죽여 취하며 울었던 노래들 모두 다 기억해요 기억해요 기억해요 기억해요 더보기
일종의 고백. 이영훈 사랑은 언제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또 마음은 말처럼 늘 쉽지 않았던 시절 나는 가끔씩 이를테면 계절 같은 것에 취해 나를 속이며 순간의 진심 같은 말로 사랑한다고 널 사랑한다고 나는 너를 또 어떤 날에는 누구라도 상관 없으니 나를 좀 안아 줬으면 다 사라져 버릴 말이라도 사랑한다고 널 사랑한다고 서로 다른 마음은 어디로든 다시 흘러갈테니 마음은 말처럼 늘 쉽지 않았던 시절 더보기
홍어. 김주영 눈은 어떻게 해서 차가움과 따뜻함이, 공허함과 팽만함이, 그리고 소멸과 풍요함이 부담 없이 서로 오묘하게 어우러져 조화의 절정에 이를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수없이 날려보낸 연들을 생각했다. 앞머리를 깝죽깝죽 키질하며 까마득하게 뒷걸음질쳐 사라지던 연들은 언제나 나를 비웃는 듯했다. 나는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어디론가 간다는 일이 절벽과 마주친 것처럼 아득하고 막막하기만 했다. 더보기
누나. 고증식 밤늦도록 부엌방에 불빛 일렁이더니새벽녘 첫차 타러 나온 내 손에 가만히 물 묻은 손이 다가와 얹혔다시댁식구들 몰래 따라 나온 구겨진 지폐 몇 장 더보기